
풍성한 큐티를 위하여
1.들어가기
교회에 다니는 사람 가운데 큐티(Quiet Time)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큐티를 잘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얼마 전 교회 청년부 소모임을 하던 중 평소 큐티에 부담을 느꼈던 한 후배가 ‘왜 큐티를 해야 하는가?’를 질문을 하면서 활발한 토의를 했던 적이 있다. 청년들이 큐티를 하며 느끼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묵상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경을 읽지만, 그 본문이 말하는 바를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이 문제는 자연스레 실용적인 신앙으로 이어졌다. 내게 감동을 주고 삶의 실제적인 문제에 지침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자의적 해석이 되었다. 말씀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핵심을 알지 못하고, 현대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접하고 있다. 교훈적이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묵상에 그치고, 매일 큐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큐티 책에서 제시하는 짧은 본문만을 보다 보니 문맥적인 흐름을 놓치며 그날 그 상황에 맞는 것들만을 찾으려는 오류로 인하여 본문의 흐름이 무시되는 문제가 생겼다.
큐티를 하면서 생기는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문제와 문맥적인 흐름을 놓치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올바르고 풍성한 큐티를 할 수 있을까? 이번 소논문에서는 큐티를 간단히 정의하고, 풍성한 큐티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2. 큐티란 무엇인가
큐티는 경건의 시간, 명상의 시간, 매일의 헌신 등 많은 용어가 있지만 하나님과 단 둘이서 조용히 만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로 하나님께 반응함으로써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1882년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후퍼(Hooper)와 도르톤(Thorton)등 몇몇 학생들이 시작했던 경건 훈련 운동으로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음과 생활이 ‘세속적인 경향’으로 꽉 차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하루 생활 중 얼마를 성경 읽기와 기도로 보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것을 ‘경건의 시간’(Quiet Time)이라고 불렀고, ‘경건의 시간을 기억하자!’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중국 선교사로 헌신하며 사역을 감당해갔다. 후에 이들의 경건 훈련 방법인 큐티는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수많은 선교사, 설교자, 사역자들에 의해 경건 훈련 방법이 되어 공유되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대유행을 일으켰고, 성경과 신학을 대하는 교인들의 태도를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는 성경은 설교를 통해 주어진 본문의 의미만을 묵상하였다면, 큐티의 도입으로 성경을 나의 삶에 직접 관계된 말씀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큐티는 수동적이었던 신앙생활에서 능동적으로 변화되는 역할을 하며 경건 훈련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3. 풍성한 큐티를 위하여
1) 숲을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성경은 여러 저자에 의해 쓰였지만,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저자들을 감동시키셔서 쓰여진 책이다. “성경은 특별계시의 책이며 신학의 유일한 외적 인식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특별계시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바로 이 원천에 의존해야 한다.”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 섭리로 지어진 책이다. 성경을 읽을 때는 저자이신 하나님의 성경 저작 목적을 염두에 두며 읽어야 한다.
새가 높은 곳에서 지상 아래를 넓게 보는 큰 조망이 중요한데, 큰 숲을 볼 수 있어야 나무의 의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성경 전체가 주고자 하는 하나의 주제를 우리가 명확하게 알 때 세분화되어 나누어져 있는 성경들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각 부분적인 내용이 아닌 하나의 주제를 가진 책으로 볼 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을 관통하는 관점이 필요한데, 이를 통해 각 권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핵심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⓵ 구속사
구속사적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구속사(救贖史)에 대한 의미부터 이해해야 한다. 한자를 보면 구할 구(救), 대속 속(贖), 역사 사(史)를 쓰고 있는데, 한자에서 구속사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이 죄로 죽어야 하지만 그 죄를 대신 사하여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다. 온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을 사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는 역사의 전과정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코자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점진적으로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성경을 잘못 사용하면 윤리적 모범을 보여주는 책으로 전락시키기 쉽다. 인간 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다 보면 전기적 인물을 고찰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로 전개된다. 그리고 도덕적 교훈을 찾으려는 시도 때문에 구속역사를 세속사로 전락시켜 버리게 된다. 구속사적 해석은 항상 하나님 편에서 접근하도록 한다. 성경의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역사로 보기 때문에 어떤 인물의 성공적 삶을 말하기보다 하나님께서 그 인물을 통해 무엇을 하셨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한다.
구속사는 예전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셨고, 현재도 역사하시고, 미래에도 역사하시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이다. 이 역사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결국 구원의 길은 현재에도 계속 이어져가고 있다. 구속사적 관점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성경의 본문 속 구원사의 역사를 파악하고, 주님의 요구를 따라 살아가게 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바른 적용으로 이끌 것이다.
⓶ 언약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서 구속사의 관점에서 언약적 성격을 갖는다. 특히 구약의 주제가 바로 이‘언약’으로 언약이라는 주제가 관통한다. 구속사는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인간이 죄로 죽어야 하지만 그 죄를 대신 사하여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 구원의 역사를 말한다. 이러한 구속사역을 진행하기 위한 도구로 언약을 사용하신다.
본래 언약이라는 것은 사람을 묶는 역할을 한다. 언약은 홀로 맺어지지 않는다, 최소한 둘 이상의 관계 가운데 맺어지는 것이다. 계약은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을 결속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한다. 성부, 성자, 성령으로 서로에게 끊임없이 헌신하고 계시고, 그분들의 연합으로 창조사역을 하셨다. 우리는 언약적 피조물로 창조된 것이다. 우리는 ‘언약적 피조물’로 창조되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이 이어진다. 이러한 언약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주권적으로 사역되는 피로 맺은 약정이다.’
언약은 구약성경 전체를 흘러 신약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주셨던 메시아 언약을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다윗에게도 동일하게 제시하셨다. 선지자들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 언약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이르러 실제적으로 그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을 ‘언약적 관점’으로 봐야 한다.
⓷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란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왕국을 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지배, 주권을 지칭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며 특히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를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언약의 중심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형성에 가길 원하셨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형성 되어가는 가정 속에서 그의 백성 된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했는지 그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고 어떻게 반응하셨는지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 성경이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어떻게 나라로 형성해 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국민을 선택하시고, 땅을 허락하시고, 그 땅속에서 이스라엘이 민족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도록 허락하신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대부분의 모습들이 슬플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땅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이 나라의 기초 체제 자체를 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답게 다시 돌아오기를 끊임없이 촉구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구약성경의 있는 많은 이들은 그 부분들을 포기한다. 구약성경을 읽을 때는 이 관점을 꼭 기억해야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들을 형성하셨는가?’, ‘그들에게 어떻게 땅을 주셨는가?’,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외면했는가?’, ‘그때하나님은 어떻게 이들에게 반응하셨는가?’
신약성경은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던 나라에서 민족, 열방, 전 세계로 확장됐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그 범위도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작은 민족을 넘어서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인류에게 포함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은 성령에 의해서 각각의 성도들의 양심과 신앙 안에 새겨진 바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신약을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는지’, ‘하나님의 법을 우리가 어떻게 받았는지’,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다시 살아가게 될 온 인류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떠한 삶을 모범으로 보셨는지’를 먼저 발견해야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법’이다. 그리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이라 부르신다. 그때의 신약 성경에 있는 제자들이 온 인류 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어떠한 수고와 헌신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신약 성경에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아다니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형성해가는 과정들이 바로 신약 성경에 기록되었다.
성경 전체를 읽을 때는 하나님 나라가 처음 ‘아브람’이라고 하는 민족의 조상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을 확장된 모습. 그리고 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인류로 이루어져 가는 모습들을 발견되고, 하나님의 법이 모세오경 토라라고 이야기 되고 있던 이 성경 속에서 성령의 법이 모든 성도들에게 새겨지기까지 어떻게 점진적으로 변화되어 왔는지를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새겨둔 이 이스라엘이 민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외면하며 살았는지를 봄과 동시에 지금 성령의 법안에 살고있는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고 있는지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전체 이야기를 읽을 때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까지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장엄한 역사의 흐름을 따라 점진적으로 확장돼 왔는지를 염두에 두고 성경을 읽는다면 그 안에 풍성한 성경 묵상이 가능할 것이다.
4. 나가면서
지금까지 우리는 큐티를 간단히 정의하고, 풍성한 큐티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먼저는 성경 전체를 관조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성경의 핵심주제를 파악하고 성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성경 전체가 주고자 하는 하나의 주제를 우리가 명확하게 알 때 66권을 이루는 각권의 성경 하나하나를 성경들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교훈적이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묵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바를 깨달아 적용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짧은 본문을 보더라도 문맥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성경의 어느 부분을 펼치더라도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훨씬 더 우리의 성경읽기가 풍요로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성경읽기가 늘 재미있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합당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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