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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온라인 예배의 신학적 타당성 여부

by noahegabi 202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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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예배의 신학적 타당성 여부

1. 들어가며

 

코로나 펜데믹으로 악화됨으로 인해서 국내외적으로 온라인 예배가 많이 시행되었다. 국외에서는 지역 전체가 폐쇄 명령이 내려짐으로 인해서 이동이 금지되어 예배를 회집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에서는 갑자기 확진자가 많이 발생해 공황상태에 빠졌던 대구 지역의 교회들이 제일 먼저 온라인 예배를 시작하였고, 그 외 지역에서도 확진 환자가 발생한 교회들은 정부로부터 폐쇄 조치를 당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예배를 선택하게되었다. 그러나 온라인 예배를 시행하면서 신학적인 논의를 전혀 하지 못한 채 온라인 예배를 시작함에 따라 혼란이 야기되었다. 온라인 예배를 합당한 예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 이 사회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예배일까? 예배가 무엇인지 간단히 알아보고 온라인 예배의 타당성을 살펴보자.

 

2.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어원학적으로 보면, “엎드린다.”, “절한다.”, “복종한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예전적인 시각으로 보면, “섬김”, “봉사”, “사역등의 의미가 포함되기도 한다. 하지만 단어의 어원적으로만 예배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예배의 장소적 측면

로버트 웨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만남 이라고 정의한다. 예배를 드리는 주체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이는 공동체 예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구약에서부터 자기 백성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말씀을 통해 계시하셨다. 성막, 성전에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하나님의 임재가 보장되는 예배의 장소였다. 이후, 신약시대 예수님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로서 땅에 있는 성전은 그 의미를 상실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직접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이 아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디서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을 만나 대화하실 때 수가 성 여인도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예배의 장소에 대한 이견을 필력했었다. 예수님께서는 장소 문제에 대해서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을 제대로 알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의 장소를 논할 때도 예배의 장소가 어디냐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예배의 시간적 측면

시간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약에서는 안식일이나 월삭이나 특별한 절기나 하나님이 정하신 날에 하나님을 예배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오심으로 특별한 날의 의미는 없어지고 예배에 있어서 시간적인 제약이 사라졌다. 오늘날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이 아니다. 성경의 안식 개념은 하나님께서 창조 후 안식하심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우리에게는 모든 날이 안식을 누리는 날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사는 연약함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는 우리가 그 안식을 온전히 누릴 수가 없다. 그래서 구약의 백성들처럼 하루를 정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회복하신 주일을 새로운 안식의 날로 정해 지켰다.

 

예배의 공동체성

예배는 공동의 행위이다. 우리는 예배의 공동체성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눈에 보이는 표징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선포하고 실행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 예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가 한 장소에 모여 한 마음으로 서로 화답하며 드리는 공동체 예배는 교회의 행사로서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예배를 부정하는 사람은 교회의 공동체성을 부인하는 것이고 교회의 공동체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교회의 일원으로서 드리는 개인 예배를 드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언약관계에 놓인 예배자이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고, 예배는 언약 안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는 선물이다. 언약으로서의 예배에서 언약에 대한 의식화(ritualization)를 통해 그리스도를 기억한다. 예수님께서도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두세 사람이 모인 것은 교회를 의미한다. 교회 가운데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고 그 교회가 드리는 공동체 예배를 주님께서 받으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부정하고 개인 예배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3. 온라인 예배의 가능성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배 시간의 수정, 예배 장소의 변경은 얼마든지 새로운 것들을 도입하여 사용할 수 있다. 예배의 형식도 그 사회의 문화와 시대에 어울리게 토착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사회가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예배의 형태와 기능도 그에 맞춰 유기적으로 변하고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수용과 변화에 있어서 예배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아야 하고 예배 본래의 구성 요소는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다. 인류가 애써 이룩한 문명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누리는 일반 은총이다. 오늘날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은 일반 은총으로 그 자체로서는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그 모든 문명을 하나님을 예배하고 높이며 또 복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을 정복하고 다스리라.”(1:28)라고 명령하신 명령에 부합하는 것일 것이다.

디지털로 매개되는 온라인 예배에서, 없다고 지적되는 비판은 공동체에 관한 것이다. 온라인예배는 전통적인 의미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라고 할 때, 공간적 근접성을 전제한 공동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촘촘한 조직에 기반을 둔 특정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집합 의례를 거행하는 집단만을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등장한 보이지 않는 종교 또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공간 근접성이기보다 같은 방향성을 지닌 의미 체계에의 동의와 그에 따른 실행에의 참여일 것이다.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아누스의 교회에 대한 이해는 공간 근접성에 근거한 교회 개념을 재고할 근거를 제시해 준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신비적 차원으로 확대되며,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각각의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사람이 된다고 설파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공간적 근접성의 부재를 해소할 수 있는 가상공동체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만약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홀로그램을 통해 온라인예배에 접속한 개인들이 예배공동체로서 한 공간에 현존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온라인예배에 대한 문제 제기, 곧 공간적 근접성에 근거한 공동체 부재의 예배라는 문제 제기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기우가 될지 모르겠다.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주목하고 서로에게 공감하고,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예배공동체 형성에 있어서 공동체성의 핵심은 공간적 근접성보다 성령의 교통 가운데 있는 성도의 교제에 있다. “교회의 교제는 근본적으로 성령의 선물이다.” 더욱이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에 기댄 교회론에서 보자면, 온라인예배의 결격 사유로 지적되는 공간적 근접성에 근거한 예배공동체의 부재 문제는 다시 생각해야 할 여지가 많다.

하지만 온라인 예배를 시행하면서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경험한다. 온라인 예배 방송 송출의 어려움, 인터넷 사각지역에 있는 분들, 성찬의 교제 등이 있다. 이는 온라인 예배가 결코 절대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라인 예배를 개혁의 방편으로 보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온라인 예배를 실시하면 개혁을 실천하는 것이고 오프라인 예배만을 고수하면 개혁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온라인 예배는 교회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서 실시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가치 중립적인 것으로 각 교회 공동체가 공동체에 유익이 된다면 필요에 따라 결정해서 형편에 맞춰 실시할 일이다. 온라인 예배를 해야만 시대에 맞춰 교회를 개혁해 나가는 것이고 온라인 예배를 하지 않으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5. 나가면서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교계 일부의 반응에 대해서 주일 공동체 예배를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의 중심이라는 신앙적 신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연 이런 신앙적인 신념은 옳은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신념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지기 전에 교회가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위기에 봉착했을 때 온라인 예배라는 방법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는 데 의미를 두어야 한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는 그 사회에 적응하고 새로운 것들을 적용하는 창조적 목회는 필수적이다. 이것을 생각할 때 온라인 예배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예배당이나 온라인에 국한되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하는 모든 곳의 주인이시오, 그리스도는 우리가 이루는 모든 공동체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에 교회는 비대면으로 인해 소외된 개인을 찾는 가교로써 온라인을 활용하되, 특수한 상황에 있는 개인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심방을 효과적으로 접목하여 복음으로 사람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교회의 공공성은 예배의 경우와 같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여부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중심으로 시대적 상황과 소통하는 가운데에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화두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온라인 예배의 신학적 타당성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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