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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불트만 신학

by noahegabi 202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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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트만 신학

불트만 신학의 요전

 

1) ()신화화 - 신약과 신화(1941)

(1) 신약성경은 신화적 세계관에 의해 영향받고 쓰여짐. 신화: 이 세상을 가지고 저 세상을, 인간을 가지고 신들을, 현세를 가지고 내세를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표현(G. Ladd) - 주후 1세기의 신화(3층천적 세계관, 예수 및 바울의 생애를 전설적 신화로 묘사) - 유대묵시문학, 영지주의적 신화와 연관, 특히 예수님의 선재와 동정녀 탄생)

(2) 그것은 오늘날의 과학적 세계관과는 배치됨

(3) 신화에 대한 전통적인 두 가지 입장

. 그대로 받아들임(정통 주의) - saccrificium intellectuae/현재 지성계에 맞지 않음

. 버림(자유주의) - 본질은 사라지고 윤리만 남음

(4) 3의길: 탈신화화 - 신화를 제거하고 싶어하지 않고, 오히려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 - 신화를 그대로 받거나 단순히 던져버리지 않고 제3의길을 모색

(5) 신화는 단순히 껍데기. 그 안에 든 메시지를 끄집어내야 한다. - 그것이 탈신화적 작업

(6) 성경적 신화는 그 안에 의도된 신앙(신념)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7) 신화의 본래 의도는 객관적인 세계상을 제시하는데 있지 않고,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의 인간의 자기이해를 표현하는 것

(8) 따라서 신화는 우주론적으로가 아니라 인간론적 즉 실존적으로 해석해야.

* 신화의 본래적인 의미는 하나의 객관적인 셰게관을 제시하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자기의 세계 안에 있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화는 우주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론적인 것이다. - 불트만의 신약과 신화 중

(9) 그것은 신화적 진술에서 신화의 형태만 벗겨내는 작업이다. - 그렇게 하므로 신화적 진술의 본래적 의미를 분명히하는 작업이다.

(10) 그것은 우주론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론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실존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11) 인간의 실존에 근거한 해석을 통해서만이 신화의 바른 해석을 찾을 수 있다.

(12) 그에 의하면 복음은 인간의 상황에 관계있는 것이다.

(13) 그래서 복음에서 인간실존에 대한 답변을 찾아내어야 한다. 신화속에 들어 있고, 감춰있던 메시지를 말이다.

 

2) 실존주의 해석학

(1) 비신화화: 일종의 해석방법으로 하이데거에 의해 개발된 실존주의해석을 의미함

(2) 전이해(Vorverstandnis): W.Dithey에게서 끄집어온 사상 - 텍스트를 해석하기 전에 해석자가 질문의 전제를 갖는 것, 질문의 방식은 질문자의 삶에 근거한 관심에서 나옴, 불트만은 성경본문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나에게 의미있는 말씀이 된다. => 해석학의 과제는 역사적 개인의 이해이다.

(3) 그의 결론: 해석학의 과제는 독자들의 이해이다.

* 전제가 없는 해석은 가능한가?(1957) - 전제가 없는 해석은 가능하지가 않다. 그러나 필수적인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텍스트를 질문함에 있어서의 역사적 방법입니다(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찾아야 하고,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3) 케리그마 신학: 알림, 설교

(1) 이렇게 신약에서 신화적 틀을 벗겨내고, 찾은 그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를 그는 케리그마라 한다.

(2) 그것은 내용은 인간의 실존에 대한 것.

(3) 그가 하이데거의 영향 속에서 찾은 인간 실존의 모습은 - 자신의 자연적인 현존에서 세속적 권력, 시대적 관심과 사물 속으로 침몰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실존은 불안에 쫓기고 있다.

(4) 그런데 신약에 나타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은 인간실존의 변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5) 이런 가능성은 신앙적 결정에 의해 각자에게서 실현되어진다. , 케리그마의 교훈에 응답하는 신앙적 결정에서 실현되어진다.

(6) 이러한 케리그마는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고 그것으로부터 독립적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오로지 인간실존의 변화를 상징하는데에만 의미를 지닌다. = 역사적 예수에 대한 무관심

(7)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부활은 역사적 사실로 믿지 않는다.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이 포함된 역사적 사실은 절대로 상상할 수 없다. 부활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헬레니즘의 제의 신화가 신약 성경에 들어온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에게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이다.

(8) 이 부활은 그의 제자들에게 의미있게 다가온 것임. 마치 종말론적 사건으로. 그 안에 결정적인 인간실존의 결정적인 변화(죽음 같은 현실의 한계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로 이해되어지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4) 기타 그의 신학 사상

(1) 계시론: 말씀에 의한 정보의제공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 놓인 나에게 일어난 하나의 사건. 그것은 청자에게 새로운 자기이해와 참된 실존을 창조한다. 동적인 계시론을 주장.

(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다. 상호동일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성경 안에 포함되어 있다.

(3) 예수 그리스도: 나사렛 예수는 비극으로 생을 마감. 그리스도는 신화적 인물이다.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를 실존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4) 속죄: 죄 없는 1인이 모든 사람을 대속했다는 것은 신화

(5) 부활: 생물학적 죽음에서의 소생은 비역사적이다. 영지주의적 영향으로 봄

(6) 종말: 역사적 종말은 없다. 참된 실존은 미래로 열려있다는 뜻. 하나님은 오고 있는 분이다.

5) 불트만 신학의 후역사 - 소위 신해석학이 등장

(1) 귄터 보른캄, 에른네스트 케즈만 등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극단적 태도로부터 멀어짐.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 안에 나타난 그리스도 간의 연합을 강조. 쿨만이나 예레미아스 등도 그의 방법론은 채용하지만, 역사적 예수를 무시한 것은 배격함. 한스 코젤만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의 연속성을 주창

(2) 불트만: 여전히 실존해석에서 개별사건의 역사성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생각. 문제는 신약의 신화가 인간의 실존에 관해 무엇을 말하고, 또 어느 정도 인간을 결단으로 부르는지에 있다고 봄

(3) 이후에 오스카 쿨만, 게르하르드 폰 라트, 판넨베르크등이 논의를 이어감

(4) 토착화신학

. 문화적 토착화(찬송, 예배, 성례, 예술작품 등)

. 신학적 토착화(교리 - 삼위일체, 성육신, 기철학) - 1960년대 한국신학계: 토착화 운동과 논의

6) 불트만 신학에 대한 평가와 비판

(1) 20세기 신약 및 성경연구에 결정적 영향을 줌

. 역사적 예수 연구를 끝내고 케리그마적 그리스도를 강조

. 신약의 배경사나 영지주의 등 학문적 업적

. 현대인에게 어떻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려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한 태도

(2) 많은 문제점

. 성경은 신화가 아니다. 그는 고등비평을 도입하여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이라는 틀로 성경내용을 수용하지 못하고 배제함.

. 복음의 내용을 담는 틀과 내용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탈신화화는 불가능하다.

. 그가 찾은 케리그마는 성경내용에 맞지 않다. 복음의 내용은 인간실존해석이나 답변에 머물지 않는다. 훨씬 더 본질적인 죄의 문제, 구원의 문제를 말한다.

. 그는 복음을 탈신화화해놓고, 다시금 그것을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로 재신화화했다.

. 결과적으로 그의 탈신화화는 탈게리그마화이다.

. 그의 신학은 기독교의 복음을 실존주의 인간론으로 바꾼 것

.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야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고 주창

. 구원은 인간이 자신의 참된 실존을 찾는 것

. 1952년 독일 루터교 총회 - 그를 이단적 사상가로 규정

 

기독교 철학 - 존 칼빈이 말한 이교철학자들은 이성을 삶의 지혜의 행위의 유일한 지침으로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철학은 우리에게 우리가 우리의 이성을 성령님에게 굴복시키는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더이상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살아계시고 지배하신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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