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강요』(1권1-12장)와 『개혁교의학 개요』 1-8장를 중심으로
Ⅰ. 서론
존 칼빈(John Calvin)은 16세기 신학자로서 말씀에서 벗어나 왜곡된 길을 가던 교회를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방향을 전환시킨 종교개혁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이다.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20세기 칼빈주의 신학자들 가운데 한 명이며, 개혁주의 신학자로서 인정받는 인물이다. 그의 저서 『개혁교의학 개요』는 칼빈의 『기독교강요』 와 같이 개혁주의 신학에 큰 획을 그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신학에 영향을 끼치는 책 중 하나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모든 현상으로부터 하나님을 발견하며, 모든 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칼빈주의의 핵심인 ‘하나님 중심 사상’을 계승하여 19-20세기에 걸쳐 바빙크를 중심으로 화란에서 한 운동이 일어난다. 이것이 신칼빈주의(Neo-Calvinsm)이다. 신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의 사상을 그 당대의 문제와 연관시켜 발전시키려 했고, 이런 식의 현대화를 신칼빈주의라 부르기를 제안하였다.
그렇다면 존 칼빈과 그의 영향을 받아 그의 신학을 발전시켜온 헤르만 바빙크의 신학이 어떤 양상을 띠며 발전되었는지 살펴보아야겠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의 저작들을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겠다. 그들의 저작인 『기독교강요』(1권1-12장)와 『개혁교의학 개요』1-8장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칼빈의 사상이 어떻게 계승되고 발전되었는지 확인하고, 존 칼빈과 헤르만 바빙크의 신학적 견해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자.
Ⅱ. 하나님을 아는 지식
1) 존 칼빈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 1권의 첫 시작을 세상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창조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의 피조물인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물음을 던지며 시작한다. 즉, 하나님의 지식과 우리 자신의 지식을 다루는 것으로써 시작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받은 은사들이 한 분이신 하나님 안에서 존재하며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지혜, 즉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모두가 두 가지 부분으로 되어있다.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나는 지식이 바로 그 두 가지 부분이다. 존 칼빈은 자신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받은 은사들이 한 분이신 하나님 안에서 존재하며 나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우리 자신을 알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알게 하는 것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부터 이탈한 인간은 무지, 공허, 궁핍, 부패를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비참함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게 된다. 즉 자신의 부족함과 불만은 하나님을 찾도록 우리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칼빈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가?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높이 올려서 하나님께로 향하기 시작하여 그가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하고, 또한 그의 의와 지혜와 권능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완전한가를 생각하며, 또한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따라야 할 표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이전에 거짓으로 의인 것처럼 뽐내어 우리를 즐겁게 하던 것들이 그야말로 추악하고 더러운 것이 되고 말 것이며, 지혜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던 것이 지극히 어리석음의 냄새를 풍기게 될 것이며, 또한 덕스러운 열심의 모습을 보이던 것이 지극히 비참한 무능함으로 들어나고 말 것이다.” 즉 자신에 대한 참된 지식은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깊이 생각함으로 자신을 검토할 때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모든 판단을 심사할 수 있는 유일한 표준이며 우리가 닮아야 할 모범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위엄과 자신들을 비교해 보기 전에는 결코 자신의 비천함을 자각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필요한 참된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경건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경건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깨달음으로써 생기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존경이 결합된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경건이 확립될 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느끼게 하고, 무엇이 우리에게 적합하며,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선천적으로 인간의 마음에 뿌리박혀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무지를 가장하여 도피하지 못하도록 그의 신성한 위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모든 사람들 속에 심어 주셨다. 비록 다르게 나타나지만 보편적으로 인간은 종교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천지창조 이후로 종교 없이 살았던 지역, 도시, 가정은 없었다. 우상숭배까지도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종교는 인간이 임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종교의 씨앗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을 간직하는 사람과 열매 맺게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지식이 무지와 악의에 의해 소멸되거나 부패해지기 때문이다. 칼빈은 바울의 말(갈4:8)을 빌려 무지가 하나님에 대한 모호하고 그릇된 견해임을 말한다. 악인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으로부터 이탈하여 교만한 허영과 강퍅함으로 자신의 상상 속에 지어낸 것들을 생각하며 예배한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그릇된 자만심과 터무니없는 욕망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에 관하여 야유하며 그분을 격하시키는 인간들의 마음에도 신성에 대한 감각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천지창조와 지속적인 통치에 의해 빛이 난다. 그분은 인간의 마음에 종교의 씨앗을 주심으로, 우주의 전 창조를 통하여 그의 솜씨를 보여주심으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매일 매일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는 하늘과 땅에 무수히 나타난다. 그렇기에 아무리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일지라도 모른다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가 가장 선명하게 입증되는 존재는 인간이다. 철학자들은 인간을 하나의 소우주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권능, 자비, 지혜를 설명해주는 표본임으로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자연의 증거를 통한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는 내용이 많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능은 지금도 모든 만물(인간의 삶까지) 가운데 섭리하시고 지배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을 찾는 가장 완전한 길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조사가 아닌 하나님을 경배하고 자신을 밝히시는 그의 사역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천국 삶에 대한 소망을 일깨울 것이다.
그러나 창조와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증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둔감함과 어리석음 때문이며, 자신의 길 좇는 일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만물이 바른 길을 가르쳐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씨앗을 부패시키며 온전한 과실을 맺을 수 없도록 만든 책임은 자신이 져야함을 말한다.
칼빈은 이러한 방법이 실제적으로 체험되기 위해서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과정에 개입하셔야 한다고 설명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획득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이 모든 선의 근원이시라는 것과 또한 그분 이외에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선사한다.
칼빈은 이와 같은 설명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을 관계적으로 아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칼빈은 인간과 관계를 맺지 않는 신은 인간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를 위하시는, 우리와 관계 맺으시는 하나님이야말로 참 하나님이심을 주장한다.
칼빈은 이러한 주장의 결론으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와 경외로 이어져야 함을 계시한다. 우리에게 두려움과 경외가 생겨나야하며, 지식의 안내와 가르침을 받아서 모든 선을 찾기를 배워야 할 것이고,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 돌리기를 배워야함을 주장한다.
2) 헤르만 바빙크
헤르만 바빙크는 『개혁교의학 개요』을 하나님이 사람의 최고선이심을 고백하며 시작한다. 하나님을 최고의 선이라 인식하는 피조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 제한된다. 다른 것들은 영적인 세계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육신의 질서에 속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다. 영원한 것들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각하는 이성과 의지는 사람의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시간을 사람 마음속에 두셨다. 그리고 흘러가는 자연과 역사의 과정 속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을 구하며 알게 하신다.
바빙크는 하나님을 사람의 최고선이자 초자연적인 질서라고 설명하면서 사람이 죄로 인해 지식과 의와 거룩함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자연과 역사의 흘러가는 과정에 속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영원한 질서를 향한 동경이, 즉 사람의 최고선이신 하나님을 향한 동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최고선이자 영원한 질서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바빙크는 과학, 지식, 또는 학문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사람의 최고선은 하나님이라는 것은 성경 전체가 증언한다. 성경에는 은혜의 언약이 시대마다 계속 반복된다. 교회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믿음의 감사와 찬양을 고백한다. 교회의 고백은 삶의 구체적인 체험에서 우러나온다. 그들이 그러한 체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을 그들에게 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영생, 즉 구원의 총체가 유일하신 하나님과 또한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요17:3).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앎은 사람의 지식과 원리, 본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그 지식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 이외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또한 다른 지식은 피조물과 세상의 것들로 제한된다. 즉 절대로 영원자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간접적인 것(정보)과 직접적인 것(진정한 앎)으로 나뉜다. 정보는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러나 진정한 앎이란 피조물이 아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 자체가 새롭고 영원하며 복된 삶이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지에 대해서 주목한다.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시는 것을 ‘계시’라고 한다. 계시는 특징을 가진다. 첫째, 하나님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계시는 모두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셋째, 하나님을 계시의 목적으로 둔다. 하나님의 계시는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로 구분된다. 일반계시는 일상적인 현상, 사건으로 모든 인류를 보존하는 것이며, 특별계시는 예언, 이적, 비범한 수단들로써 복음 아래 사는 모든 이들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들은 본질적으로 구분되지만 둘 다 하나님께 기원을 둔다. 하나님은 사람의 바깥에서 자기를 계시하시며, 또한 그의 속에서도 그 자신을 계시하신다.
일반 계시는 온갖 종류의 영적이며 물질적인 것들을 생산하고 분배하며 누리게 한다. 그로 인하여 인류가 보존되며 역사를 지속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계시의 빛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특별 계시가 필요해진다. 특별 계시가 발생하는 방식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수단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 계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특별 계시에 나타나는 말씀하심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일반 계시의 경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만물 속에서 그의 생각들을 찾도록 하시는데 반해서, 특별 계시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런 생각들을 직접 표현하시며 그런 방식으로 사람의 정신에게 제시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시의 목적으로 사용하신 수단은 두 가지다. 첫째, 외부적이며 객관적인 성격을 띠는 수단들이 있다. 둘째, 사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주관적인 모든 수단들이다. 이 두 종류의 계시 수단은 현현과 감동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특별 계시는 타락 이후부터 곧바로 주어졌다. 구약의 계시 전체가 그리스도에게 집중된다. 그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완성된 계시이시다. 그의 사역을 마치신 이후, 하나님의 계시가 더 늘어나거나 확충될 수 없다, 내가 네 하나님이 되고, 네가 내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이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도 계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약속과 성추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러한 체험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바빙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실재적임을 강조하였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가 어린아이들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그 지식을 우리에게 주시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지식은 그리스도 이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 대상에 있어서도 다른 모든 지식과 다르다. 다른 지식의 경우는, 세상의 것들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로 영원자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잇찌만, 이는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아는 온갖 지식일 뿐이라고 말한다. 바빙크는 이와 같은 지식이 진리를 행하는 그리스도의 실천과 사랑을 통해 주어진 인격적 지식임을 강조한다.
3) 하나님을 아는 지식 유사점
지금까지 칼빈과 바빙크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신인식에 관한 견해를 살펴보았다. 바빙크는 믿음은 지식(notitia)을 포함한다는 칼빈의 인식론에 동의한다. 두 사람 모두 지식의 존재 원리로서의 하나님을 전제하고 있다. 칼빈은 인간들의 마음에도 신성에 대한 감각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라 주장하며 바빙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도 지각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을 참된 지혜의 빛과 모든 선의 풍성함의 근원으로 설명하고 있다. 바빙크 또한 하나님이 지식의 존재 원리이심을 밝히는데, 하나님을 사람의 최고선이라고 표현하여 설명한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실재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신뢰와 경외를 수반한 지식이라는 것이다. 바빙크는 이러한 맥락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진정한 앎이란 인격적인 관심의 요소와 개입과 마음의 활동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빙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순종과 사랑을 통해 우리의 영혼의 체험 속에서 덕과 의와 거룩함과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4) 하나님을 아는 지식 차이점
헤르만 바빙크가 칼빈의 사상을 계승하였지만 두 사람의 견해에는 차이점 또한 존재한다. 차이점으로 칼빈은 자신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받은 은사들이 한 분이신 하나님 안에서 존재하며 나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부터 이탈한 인간은 무지, 공허, 궁핍, 부패를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비참함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게 된다. 즉 자신의 부족함과 불만은 하나님을 찾도록 우리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바빙크는 사람은 영원한 것들을 자각하고 존재이며, 자각하는 이성과 의지는 사람의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시간을 사람 마음속에 두셨다. 그리고 흘러가는 자연과 역사의 과정 속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을 구하며 알게 하신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찾도록 하는 배경을 칼빈은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의 사람의 비참함’에서 찾지만, 바빙크는 ‘사람의 영원한 질서를 향한 동경’에서 찾는다. 칼빈은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비참함과 무능함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역할으로서의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정도의 차이가 두 견해 속에서 존재한다. 존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내적으로는 인간의 마음속에 나타나며 외적으로는 자연 만물을 통하여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창조와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증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둔감함과 어리석음 때문이며, 자신의 길 좇는 일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한다. 하지만 뒤를 이어서 그는 하나님께서 먼저 그의 사역을 통해서 그를 창조주로 보여주시고,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자신을 구속주로 보여준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우선적으로 성부 하나님의 사역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바빙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정보와 진정한 앎을 구분함으로 진정한 지식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 이외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음을 주장하였다. 바빙크는 칼빈과 비교해보았을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더 강조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는 그리스도가 표현되는 하나님이시고 주어지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자기 자신을 나누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를 통해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를 통해 획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의존한 것이며,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 직접 아는 지식(knowledge of)를 소유하고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빙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의 역할을 조금 더 긴밀하게 연관시킨 측면에서 칼빈과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Ⅲ. 결론
『기독교강요』(1권1-12장)와 『개혁교의학 개요』(1-8장)에 나타난 존 칼빈과 헤르만 바빙크의 견해를 살펴보았다. 특히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신인식론)에 관해 존 칼빈과 헤르만 바빙크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점과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존 칼빈과 헤르만 바빙크 모두 지식의 존재 원리로서의 하나님을 전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자신을 알 수 있는 감각을 심어놓으셨다는 전제를 두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실재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칼빈은 비참함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바빙크는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시간을 사람 마음속에 두셨고 그리고 흘러가는 자연과 역사의 과정 속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을 구하며 알게 하신다.라고 주장한다. 즉 ‘사람의 영원한 질서를 향한 동경’에서 하나님을 찾도록 하는 배경을 찾는다.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내적으로는 인간의 마음속에 나타나며 외적으로는 자연 만물을 통하여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창조와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증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둔감함과 어리석음 때문이며, 자신의 길 좇는 일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바빙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정보와 진정한 앎을 구분함으로 진정한 지식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 이외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음을 주장하였다.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도의 차이가 둘 사이에 존재하였다.
헤르만 바빙크는 존 칼빈의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서 바빙크는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통하여서 자신의 저서인 『개혁교의학 개요』을 통해서 칼빈의 신학을 수용하고 계승하여서 이를 통합적으로 발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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