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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문에서 신약 신학을 독립적 접근과 비교하여 주제별 접근으로 연구했을 때 얼마나 일관성 있고 논리적으로 기술 할 수 있는지 정당성에 대해 변호한다.
저자는 신약신학의 주제들을 이중적 관점을 통해 고찰하기를 제안한다. 첫째,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중심성이 구원의 역사, 하나님의 약속들의 성취와 밀접하게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현실적 관념일 뿐이다. 즉, 하나님의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약속들을 어떻게 성취하시는가? 와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 이를 통한 저자가 제안하는 신약의 중심 주제는 크게 신자의 구원에 대한 '이미-그러나 아직'의 입장이다. 이 안에서 구원을 주시는 분이신 '하나님', 그리고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승천 이후 그 사역을 계속해서 이어가시는 '성령님', 마지막으로 구원받는 '신자'로 굵직한 세부 주제를 잡을 수 있다.
저자는 신약신학이 하나님께 집중되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며, 성령으로 충만한 신학이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역은 구원 역사의 시간표에 따라 이해되어야 하는 것을 명제로 세운다. 굵직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꼼꼼하게 신약 성경 한 권 한권에서 그 주제를 변증한다. 정확한 입장과 출처를 따져가며 주제에 대한 변호를 확실하게 한다. 그러나 그 주제들은 동떨어져 있지 않고 각 주제들을 함께 변호한다. 또한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다양하게 인용하며 어떤 관점으로 보았을 때,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주장하는 주제로 보았을 때 어떤 결론을 낼 수 있는지 때로는 객관적이고, 유연하게 자신의 주제를 논술해간다.
이 글은 저자의 큰 주제 안에서 다룬 내용 중 강렬하게 다가온 부분이나 좀 더 고민하고 연구하고 싶은 부분을 다루도록 하겠다.
1. 요한 문헌의 이원론
저자는 요한 문헌에 나타난 이원론을 통해 만인구원설을 부인한다. 요한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죽음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실제로 제거한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요한이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라고 말할 때 세상의 모든 사람이 예수님에 의해 구원받는 다는 결론을 내려서도 안된다(84p).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원론적으로 구분해서는 안되며,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만인구원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만유구원론은 최후의 심판이후에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이 존재한다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고백을 거부하면서, 지옥의 영원성을 부정한다. 만유구원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만물의 회복을 원하시며,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로 칼 바르트(Karl Barth, b.1886)와 물트만(Jürgen Moltmann, b.1926)이 있다. 바르트는 칼빈(Jean Calvin,1509 ~ 1564)의 이원 예정론을 비판하며 하나님의 진노와 은총을 균등하게 나누는 균형적 사고와 하나님을 그의 고유한 결정 속에 얽매이게 하는 정태적 사고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본다.
칼빈은 이원 예정론(Calvins Lehre vom doppelten Preaedestinationdekret)을 주장한다. 처음부터 인간을 불가항력적으로 선택된 자와 유기된 자로 나누고 있다. 송영목 교수는 요한 문헌의 구원이 모세의 제자와 예수님의 제자 이원론적으로 구분되고 있다고 본다(요9:28). 저자는 “세상”의 용례를 통해서 이원론을 변증한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위 곧 천국에서 오신 반면 그들은 아래 곧 이 ‘세상’으로부터 왔다고 선언하셨다(요8:23).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 그들의 죄 때문임을 설명하심으로써 여기서의 이원론이 윤리적인 것임을 확증하셨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을 이야기할 때 조차도 예수님이 악이 지배하는 영역에 들어오시는 것임이 암시되어 있다. 예수님이 세상의 구원자로 오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수납할 수 없다.(요14: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은 칭의를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존함에 있어서 믿음은 칭의의 유일한 방편이다.’라고 말한다. 스위스 신앙고백(1566)에서 신앙은 하나님 선물임을 말한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순수한 선물로서, 오로지 하나님만이 자신의 은혜에 의거하여, 자신의 택하신 자들에게 그 분량에 따라 자신의 좋으신 때와 사람과 정도에 따라서 주시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복음의 설교와 신앙인의 기도를 통하여 끊임없는 성령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 제21문 구원을 받는 참된 믿음을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진리로 여기는 확실한 지식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영원한 의와 구원을 다른 이들에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베풀어 주셨다는 견고한 신뢰로서, 성령께서 복음을 통하여 나의 마음속에서 일으키시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원 사건을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으로 주장하면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예수님께 속한 자들은 세상과 세상의 통치와 구분된다. 아래에 속한 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통해 위의 영역에 속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빛이자 진리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신뢰하는 자들은 빛과 진리에 속한다. 반면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들은 어둠 속에 행하고 오류에 싸여 있다. 따라서 요한의 이원론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들의 성취라는 것으로 해석해야한다.
2. 바울에 관한 새 관점
저자는 바울 서신에 나타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 택하심과 예정 그리고 은혜를 설명한다. 택하심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고찰할 때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사이의 긴장을 기억해야 한다. 택하심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강조를 통해 모든 선택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며, 구원을 수납하는 것은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믿음, 소망, 사랑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택하심 덕분이다(살전1:2~4).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학자들이 있다. 에큐메니칼 한 분위기 가운데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반성이 싹튼 사상적 분위기 속에서 바울의 해석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G. F. Moore(1851-1931), W.D Davies(1911-2001), Krister Stendahl(1921-2008), Edward Parish Sanders(b. 1937), James D.G. Dunn(b. 1939), Nicholas Thomas Wright(b. 1948)등이 있다. 그들의 공통된 주장은 첫째 일세기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으려고 한 사람들이 아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발을 내디뎠지만 순종해야만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셋째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개종한 것이 아니라 선교사로 이방의 사도로 소명을 받은 것이다. 넷째 유대인들 문헌들 중 “선별”해서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로 순종해야 구원을 받는가?’에 대한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하지 못한다, 또한 바울이 왜 율법의 종교가 아니고 은혜 종교였던 유대교를 비판 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건으로 본다면, 결론적으로 바울은 크리스쳔이 된 적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바울은 기독교인이 된 바 없기 때문에 바울과 유대교는 연속성이 있었고, 바울은 자신의 약함은 인식했으나 죄의식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용서와 구원으로서의 칭의를 강조한 것이 아닌 이방인의 전도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되어 버린다. 이는 바울 신학 전체를 왜곡 해버리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톰 라이트는 “하나님이 가진 목적에 대한 바울의 관점은, 창조자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족을 통하여 이 세계를 곤경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라고 말하며 로마서의 주제는 ’아브라함의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라고 주장한다. 이는 성경의 많은 언약들 가운데 아브라함 언약을 특별히 강조하여 자신의 주장에 유리한데로 협소하게 정의를 내린다.
다음과 같은 바울의 새 관점주의 자들의 주장들은 바울 서신에 나타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 택하심과 예정 그리고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만일 구원이 행위에 기초한 것이었다면 구원은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진리가 훼손될 것이다. 우리는 이신칭의와 그것의 확장인 칼빈의 5대 교리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엡2:8) 올바른 기독론과 칭의론을 확립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구원파식으로 구원 받았다라고 자신을 속이며 성화하지 못한 삶을 사는 자칭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새 관점 주의자들의 관점은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많은 오류를 범하게 되며, 오히려 복음을 값싼 것이 되게 만든다. 그러므로 풍요로운 복음을 잘 이해하고 가르쳐야 하며, 칭의, 성화의 교리를 잘 정리한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문화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
3. 요한일, 이서에 나타난 믿음과 순종
사랑의 삶은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삶이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요일4:7~21).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에 대한 메아리이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사랑에 대한 반응이다.
성도의 삶에 대한 율법주의는 요한일, 이서에서 말하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규칙 없이도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참된 자유이다.
4. 누가-행전 복음에 나타난 기도
기도는 예수님의 사역의 중요 지점들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 저자는 예수님의 사명을 성취하는데 기도가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 크럼프의 견해를 지지한다(658p). 문학적으로 누가복음의 내러티브가 진행될 때 “기도”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등장하는 횟수, 연결된 시점과 사건, 주체와 내용에서 누가복음의 기도는 주목을 끄는 주제이다. 예수님의 세례, 변화산 사건, 십자가 사건을 다른 복음서 기자들도 기록하지만 오직 누가만이 세례 받으실 때 예수님이 기도한 것을 기록하고(눅3:21), 변화산 사건(9:29), 십자가에 달리신 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23:34)기도한 사실을 기록한다. 나아가 누가복음에만 기도에 대한 비유가 따로 있다(18:1-8,9-1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의 시기에 들어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눅22:40,46). 이것은 아마도 제자들이 제자들을 압도하고 쓰러뜨리는 시험을 만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크럼프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훈계에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이 일시적으로 떨어졌다는 흥미로운 제안을 하기도한다(659p).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콘첼만(Hans Conzelmann; 1915-1989)은 ‘기도신학’이란 말을 제일 처음 사용한 신학자이다. 빌헤름 오트(Wilhelm Ott)와 오스카 해리스(Oscar G. Harris)는 콘첼만의 사상을 전적으로 동의한다. 오트는 기도교훈본문(눅18:1-8)에 근거하여 누가는“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마태가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기대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는 모범을 보이셨는데, 예수님의 이 모범은 신자들에게 끊임없이 기도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그리스도의 고난 후 유혹이 시작되어 계속되는데, 교회는 이런 상황에서 오래 동안 이 세상에 머물러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오브라이언(P.T. O'Brien)은 이러한 오트의 주장에 부족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기도 모티브가 구속사의 중요한 순간들과 연결되지만, 누가는 이것을 구속사의 전환점보다는 하나님이 기도로 그분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수단으로 제시한다는 점을 놓쳤고, 둘째, 누가의 주된 관심이 독자들이 아닌 하나님과 관련된다는 점을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누가는 독자들에게 기도의 실천을 증진하려고 하지만, 이것이 주된 관심사가 아니며, 하나님은 예수님의 삶에서도 교회의 시대에도 기도를 통해 구속사의 과정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브라이언 예수님의 기도의 교훈을 하나님 중심적이라고 본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성령에 의해 동기 부여된 것이 아니라면 기도는 길을 잃게 된다고 말한다.(660p) 기도가 사람의 욕망을 이루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는 누가-행전의 주요 주제이며 교회의 선교 확장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기도해야 하며, 누가-행전에서 이는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해야한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교만이다. 겸손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살아가야한다. 예수님도 기도하여 사역할 힘을 얻었는데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내 힘으로 살겠다는 뜻이 되어버린다.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교만 죄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부르심을 "나눠 주셨기 때문에 노예들은 자신의 노예로서의 지위를 걱정하지 말아야한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노예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다는 것이며, 반대로 자유한 시민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기억하며 견뎌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 가운데서도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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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신약 신학을 주제별 접근으로 연구했을 때 하나님이 구약 성경에서 주신 구원의 약속들이 성취되는 것을 일관되고 논리적으로 기술하였다.
구약의 이야기를 요약하면서 신약주제들과 연결하며 일관되게 개관을 제공한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성취되지만, 성취를 향한 ‘이미-그러나 아직’의 특성을 제시한다. 하나님 나라의 목표, 즉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권능을 주시는 임재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 모세 , 다윗과 선지자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성취하실 분으로 보내셨다. 신약 성경은 구약의 하나님의 약속 이야기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성취하는지 설명해 준다. 죄와 사망의 권능으로 인해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유하게 하시는 역사가 필요하다. 이 안에서 구원을 주시는 분이신 '하나님', 그리고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승천 이후 그 사역을 계속해서 이어가시는 '성령님', 마지막으로 구원받는 '신자'로 전개함으로 신자들의 삶과 신앙 공동체의 사역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적용한다.
저자는 하나님의 삼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대한 논증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긴밀함, 친밀함, 서로의 사역을 높이고 돕는다는 것은 잘 설명하고 있으나 일체의 대한 논증이 부족하다. 성부, 성자, 성령님께서 구별된 위격이면서도 절대적으로 서로 분리될 수 없다. 혼합되지 않으나 분리될 수도 없다. 삼위 하나님은 항상 함께 계실 뿐 아니라 항상 함께 일하신다. 삼위일체에 대한 논증을 세세하게 다루었다면 더욱 풍성하게 주제들이 다가 왔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나는 확고한 개혁주의적,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신약신학의 전체적인 개관이 필요한 신학생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주제를 설명하기 위한 자세한 설명은 신약의 신학을 정립하는 것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전체를 보느라 작은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신약성경의 중심 메시지에 대한 훌륭한 해설을 제공한다. 신학생들은 이 책이 “도대체 신약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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