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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요한 계시록(성경원문 새번역 노트 vol. 24) 서평

by noahegabi 2022.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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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인 존 칼빈(Jean Calvin)은 계시록에 관한 주석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신학적 이론을 거의 교과서만큼이나 신봉하는 개혁주의자의 목회자들은 처음부터 계시록을 주석하거나 설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더 나아가 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상징이나 환상에 대한 해석상의 어려움 때문에 계시록을 설교하는 자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나 계시록은 1세기 일곱 교회뿐만 아니라 이후의 모든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신학자, 목회자들은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칠 사명을 가진다. 본 서는 상징이나 환상에 대한 해석상의 어려움을 겪는 자들에게 성경의 원어에 좀 더 충실한 번역과 현대어에 가까운 번역을 통해 필요를 충족시켜준다. 본서의 본문 분석과 송영목,[요한계시록]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2013 역사적-문법 해석 통해 요한계시록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1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1:1)

전치사구 (엔 타케이)는 일어날 사건의 정확성이나 신속성을 가리키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라는 의미이다. 요한의 기록연대에 근거하여 속히 될 일AD70년 사건의 긴박성을 가리킨다. 과거론자적의 해석이나 베드로전서3:8절에 근거하여 속히갑자기로 보면서 먼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성취될 것으로 해석하는 미래론자적 해석을 경계해야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니엘2:45절과 비교하여 선지자 다니엘이 예언한 이후에 일어날 일인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가 요한 당시에 성취되고 있었다고 보는 이상주의자들의 해석을 부정한다. 대신 아직 지나가지 않았지만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에 대한 상징적 묘사로 보는 것이 좋다.

 

2.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1:19)

요한이 본 것은 계시록1:10-18,20절의 환상절, ‘지금 있는 일은 계시록2:1-3:22절의 내용을, ‘장차 될 일은 계시록 4-22장의 내용을 가리킨다. 그러나 개역개정은 전치사구 이것들 후에를 번역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들 후에를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과거론자들은 장차 될 일을 요한계시록이 돌 성전 파괴전에 기록되었기에 AD70년 돌 성전 파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세대주의적 미래론자들은 이제 있는 일을 교회 시대에 적합한 발전으로 보면서 2~3장의 내용으로 해석하고, 세대주의자들도 이것들 후에에서이것들을 교회 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유사한 표현이 등장하는 계4:1은 교회의 휴거와 교회시대의 끝으로 보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므로 유의해서 읽어야한다.

 

3. 일곱 교회 편지(2-3)

2-3장에 관한 해석은 과거적 해석, 미래적 해석, 그리고 역사주의적 해석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세대주의자들이 일곱 교회를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있어서 이어지는 일곱 기간 즉 사도시대(2-3) 순교자시대(4-7) 교회의 박사들의 시대(8-11) 처녀들의 시대(12-14) 세상 제국과 투쟁하는 시대(15-18) 활동하던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파멸되는 시대(19) 천년왕국과 몸의 부활 시대(20-22)으로 나누는 것과 계시록 4장 이후로 교회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고 이스라엘’(7:4)이 나타나기에 근본적으로 불신 이스라엘을 다루는 것이라는 견해는 명백한 오류이다.

일곱 교회가 처한 상황은 목회서신에 나타난 것처럼 매우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대체로 두 가지 요인으로 시험을 당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황제숭배였고, 다른 하나는 발람과 이세벨과 같은 부패하고 타락한 로마 문화의 공격이었다. 본서는 일곱 교회가 처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예수님의 칭찬-책망-경고-격려-약속이라는 공통 패턴과 예수님과 일곱 교회에게 종주권 언약을 맺는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각 교회에게 주시는 편지 속에 예수님의 호칭 속에 내포한 의미를 깊이 묵상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승리를 주실 수 있으신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4. 천상 예배(4-5)

4:1절의 하늘의 열린 문은 문자적-세대 주의자들이 지상의 교회가 휴거됐다고 이해하는 본문이다. 23장에서는 교회라는 말이 19회나 언급되지만 계4-19장까지는 언급되지 않는 것은 교회가 휴거되었기 때문이고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은 대환난의 시련을 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4장의 천상의 보좌 환상은 승천하신 예수님과 성부께서 계시는 곳이고, 천사와 죽은 성도가 있는 하늘이다. 요한이 본 24장로는 구약의 12지파와 신약 12제자로서 구약과 신약의 구원받은 모든 백성을 상징한다. 보좌 앞에 있는 사자, , 사람, 독수리 4생물은 동서남북의 온세상과 모든 생명체를 상징한다.

계시록 5장은 성장 예수님께로 초점이 모아진다. 그에게는 완전한 권세를 상징하는 일곱 뿔(23:22)을 가졌고 성령을 상징하는 일곱 눈(4:10)을 가지고 있다. 그는 출애굽 유월절 어린양처럼 일찍 죽임을 당하셨지만 유다 지파의 사자(49)가 되신 분이시다.

보좌 위의 계신 성부께서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 두루마리를 주시는 것은 오직 권세를 위임받으신 예수님만 두루마리를 열고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받으신 7인으로 인봉된 두루마리는 AD66-70년에 초대 교회의 대적들에게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의 선고문이며 하나님의 통치 백서이다(참고, 2:9-10).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받으실 때 천상의 예배가 시작된다.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리고 각각 거문고와 성도의 기도를 상징하는 향과 금 대접을 가지고 성자께 기도한다. 24장로와 네 생물이 새 노래로 천상예배를 드린다.

 

5. 일곱 인의 재앙(6)

계시록 6장은 슥1:8-17의 말들 환상과 슥6:1-8절의 병거 환상과 합3장의 하박국의 기도와 간본문성을 가진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인을 떼실 때 등장하는 흰말 탄 자자를 1세기 로마 제국의 베스파시안 혹은 디도 장군으로 보는 자도 있다. 그러나 승리를 상징하는 흰말을 타고 하나님의 무기를 상징하는 활(3:9)을 가지신 분은 승리의 예수님이시다.

2번째 등장하는 붉은 말은 전쟁을 상징한다.Hendriksen(1975;124),석원태(1983:250)등은 그리스도인이 겪게 될 재앙이라고 해석한다. 신동욱(2010;151)은 로마제국이 자행한 온갖 박해라고 해석하지만 이는 전쟁을 상징하는 붉은 말(14:21)을 탄자가 칼을 들고 나와 불신유대인들과 로마제국을 성전파과와 로마내전을 통해서 심판하신다는 것을 상징한다. 저울을 가진 검은 말과 죽음을 상징하는 청황색 말의 등장은 심판의 참혹함을 상징한다. 6번째 인을 뗄 때 일어나는 큰 지진과 해와 달이 빛을 잃고 산이 흔들려 질서가 무너진다. 세대주의자들은 핵전쟁의 파괴력으로 해석한다(성종현,1998;58).그러나 이 상징은 박해하던 유대인들과 박해받던 일곱 교회의 상황이 역전되는 것을 보여준다.

 

6. 남은 자-144,000(7)

일곱인의 재앙은 계81절에서 시작된다. 7장은 여섯번째 인과 일곱 번째 인 사이의 간막극(interrnezzo)’과 같다. ‘간막극이 필요한 이유는 과연 이 심판의 와중에서 구원받은 남은 자는 없느냐?’라는 질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AD66-70년의 남은 자는 누구인가? 7:4절의 ‘144,000’이란 숫자는 구체적으로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직전에 하나님의 인도로 탈출한 예루살렘의 유대인 성도를 상징하는 숫자로 볼 수 있다. 144,000명은 야곱의 열두 지파와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곱한 값에다 천을 곱한 값이다. 천이라는 숫자는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번성케 하옵소서’(1:11)라고 기도한 숫자로서 많다는 의미를 지닌 숫자이다. 7:5-8절까지의 말씀도 역시 야곱의 자손 열두 지파에서 단지파가 빠지고 대신 요셉의 지파가 포함된 자손의 숫자가 각각 12천명씩 도합 144천명이다. 이런 산술적 숫자 144천명은 야곱의 열두지파에서 나온 후손에서 나온 새 이스라엘이고 또한 아시아 일곱 교회와 우리를 포함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요한은 이어서 흰옷을 입은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손에 종료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앞과 어린양앞에서 승리의 찬송(9-10)을 부르는 무리를 본다. 그들은 대환난을 당하고 어린양의 피로 씻음을 받아 흰옷을 입은 무리들이다(14).

7. 일곱 나팔 재앙(8-9)

2:1절이 주요 간본문이 되는 계8:2절의 나팔은 죄를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날을 알리는 상징이다. 천사들이 부는 일곱 재앙의 나팔은 AD66-70년경에 이스라엘 땅에 사는 불신 유대인들을 향한 것이다. ‘수목과 풀은 권세자와 일반인의 심판, ‘거대한 산이 바다에 던지우는 것은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상징한다. ‘3분의 2’의 완전한 파멸(5:2;13:8)에 비해 ‘3분의 1’의 심판은 완전한 심판이 아닌 것을 상징한다(8:7-12). 8절과 9절의 ‘3분의 1’의 숫자는 문자적으로 유대-로마 전쟁의 성취인 것으로 해석된다. 미래론자들은 나팔 재앙을 7년 대환난 동안 땅에 사는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겪을 재앙을 묘사하는 것으로 본다.

다섯째에서 일곱째 나팔까지는 하나님의 큰 화이다(9:12). 다섯째 나팔을 불 때 열쇠를 받은 별이 무저갱을 열자 예수님의 지상 사역시에 이미 쫓겨난 마귀를 상징하는 황충이 연기와 함께 나온다(12:4,9,12). 이 황충들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은 사람들, 즉 불신자들만 해칠 수 있다(4). 여섯 번째 나팔이 불 때 유브라데에 결박되어 온 네 천사를 풀어주라고 한다(13-14). 네 천사는 유브라데는 팔레스틴의 북동쪽 지역의 강인데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로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들이다. 17-19절은 역사적으로 ‘2만만으로 상징되는 엄청난 숫자의 로마 군인들이 유대 - 로마 전쟁시에 예루살렘 성벽을 허물기 시작한 것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8. 여인의 아들(12)

1절의 임신한 여인전천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핍박받는 교회나 카톨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마리아도 아니다. 이 여인은 머리에 열두 별과 면류관을 쓰고 있는 신.구약의 영광스러운 왕적 모습을 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다. ‘아이’(2)미가엘’(7)은 철장권세로 통치하시는 예수님이다. (사탄)이 영적 전쟁에서 예수님께 패배하고 쫓겨난 후 여인을 핍박한다. ‘1,260’한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반복된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시험과 양육받는 것을 보여준다. 요한 당시에 로마제국으로 상징되는 용(사탄)이 전략을 바꾸어 여인의 후손 중에서 남은 자들을 공격하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승리한다.

 

9. 바다 짐승과 땅 짐승(13)

13장의 핵심 내용은 바다 짐승(1)과 땅 짐승(11)’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문제에서 극명하게 입장이 나뉘어진다.

(1) 바다짐승: 17:15절에 의하면 바다열국을 상징한다. 전통적으로도 바다는 무질서와 혼돈을 상징하기도 한다. 따라서 바다짐승을 요한 당시 열국을 다스리며 혼란을 가중 시킨 로마제국 혹은 네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18절의 바다짐승의 수 ‘666’은 네로 황제를 상징하는 것인데 이는 게마트리아 숫자의 가치를 가진다는 이론에 근거한 결론이다. 이상주의자들은 바다 짐승을 전체 역사를 거치면서 등장한 세상의 모든 정부와 나라로 구체화된 사탄의 박해하는 세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박윤선(1991:250) 또한 바다 짐승을 세상 말기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왕국의 절정으로 본다. 후천년주의적 부분적 과거론자인 Mathison(1999:152)은 바다 짐승의 일곱 머리(13:1)는 황제들의 계통으로, 열 뿔(13:1)은 로마 제국의 속주들의 통치자들로 본다. 김세윤(2008:211)은 계13:3절을 근거로 네로 부활 신화와 연관시켜 해석한다.

(2) 땅 짐승(11) : ‘은 이스라엘/유대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땅 짐승은 로마 황제 배를 강요하는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불신 유대인 박해자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 혹은 그들의 거짓 가르침을 상징한다(16:13,19:20). 과거론자들은 땅 짐승을 저를 숭배하도록 하는 로마 제국안에 세력인 것으로 주장한다. 미래론자들은 땅 짐승의 바다 짐승과는 달리 종교적인 권세자들인 것으로 본다. 이상주의자들은 거짓 종교, 혹은 거짓 철학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10. 일곱 대접의 재앙(15-16)

일곱 대접 재앙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절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하나님은 질투하는 분으로서 음란하게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과 로마 제국을 심판하는 것을 상징한다. 7인과 7나팔 재앙과 마찬가지로 일곱 대접의 재앙 역시 AD 70년 경에 일어난 과거 사건이다. 일곱 대접 재앙은 일곱 나팔 재앙과는 달리 심판의 영역이 3분의 1에서 전체로 확대됨으로서 예루살렘과 로마의 철처한 파괴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수 있다.

철저 부분적 과거론자들은 이 재앙을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해석하는데 반하여 전환적 부분적 과거론자들은 로마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상주의자들은 일곱 대접 재앙이 애굽에 임한 열재앙과 유사한 점을 근거로 사탄의 통치하에 있는악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11. 음녀 바벨론의 멸망과 어린양의 혼인 잔치(17-19)

음녀는 구약에서 배교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키는 이중적 상징으로 해석된다. ‘음녀를 추상적인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악된 세상의 유혹하는 세력이라고 보는 것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이라는 계1:1절의 말씀에 어긋나는 해석이다. 요한은 광야로 인도되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고 가득하며 머리가 일곱, 뿔이 열 개 달린 짐승위에 올라탄 음녀 바벨론을 본다(3-5). 요한은 배교한 유대인과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음녀 바벨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생생한 시각적 표현으로 설명한다. 18:1절의 하늘에서 내려오는 큰 권세를 가진 다른 천사로 상징하는 예수님에 의해서 음녀 바벨론은 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계19:9절에서 승리한 자들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다.

역사주의자들은 음녀 바벨론의 파멸을 미래에 있을 종교와 정치적인 교황체제의 전복으로 해석한다. 이상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바벨론은 경건한 자들을 유혹하는 세상의 구조라고 이해한다.

 

12. 천년왕국(20)

천년왕국은 계20장에 갑자기 등장하는 주제가 아니라 계19:19-21절의 전쟁과 관련되어 있다. 즉 계20장의 천년왕국은 이 땅에 주님의 복음과 교회가 확장되는데 있어서 방해되는 세력과의 전투이다. 따라서 ‘1,00010×10×10으로서 충만하고도 완전한 기간을 상징한다. 따라서 천년왕국은 사탄를 결박하신 그리스도께서 왕노릇하시는 기간이며, 교회의 승리의 기간이며, 복된 소망의 기간이다.

20장의 천년왕국에 관해서는 전통적 네가지 해석보다는 예수님의 재림의 시점을 기준으로 한 후,전천년주의와 무천년주의의 해석으로 나뉘어진다.

 

13. 새하늘과 새 땅(21-22)

새하늘과 새 땅은 미래의 문자적 천국인가?(.성종현,1998:81). 아니면 지상교회의 영광스러운 모습의 상징적인 표현인가? 이것을 장소적으로 이해해야 하는가?(.이병학,2010:102;이달,2008:350).

미래론자들과 세대주의자들은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문자적 천년왕국 이후 혹은 재림 이후의 변화된 신천신지로 본다. 비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옛 언약이 지나간 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피조물 됨으로 해석한다(참고.65:17;고후5:17). 20-22장에 기록된 새하늘과 새 땅은 현재 세상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럽게 변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일어나는 점진적인 성취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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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현대 교회가 계시록의 모든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사본 비평을 통한 본문의 확정 작업을 통하여 정확한 본문선택을 바른 길을 제시하며, 원어에 대한 문법적이고 정확한 직역으로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보게 한다. 문맥과 관용어구의 이해와 문학적 특성들을 바탕으로 원어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로 이끌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생, 목회자들 뿐만 아니라 바른 해석을 기대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본서를 통해 1세기 일곱 교회뿐만 아니라 이후의 모든 교회에게 주신 말씀인 요한계시록을 수납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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