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울의 새관점 배경은 무엇인가?
1) 사상적 분위기가 바울의 새 관점을 출범 시켰다.
20세기 이래로 에큐메니칼(Ecumenical)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ex) wcc 세계 교회 협의회, wcrc(World Communion of Reformed Churches)
에큐메니칼: 온 세상에 종교의 장벽을 세우지 말고 교단에 벽을 허물어 통합적으로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20세기를 이래로 애큐메니칼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반유대주의 색채를 지닌 기독교와 유대교가 화해를 시도하고 개신교와 가톨릭의 화해를 시도하였다.
2) 이러한 사상적 분위기의 편성 했던 사람이 누굴까? 바로 유대교학자들이었다.
유대인 학자 무어(G.F. Moore)가 1920년대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 있을 때 당시,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바울 당시의 유대교는 율법 종교가 아니라 은혜에 종교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던 백성이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했던 종교는 아니었다.“라고 주장한다.
그 다음에 영국학자 중에 W.D. Davies(데이비스) 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웨일즈 출신이었다.
그는 영국인으로부터 억압을 받은 웨일즈 출신었으므로 20세기에 약자였던 유대인을 동정했다. 데이비스는 이러한 지리적,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결국은 바울의 새 관점 주의자 중의 한
명이었던 샌더스의 지도교수가 되어서 새 관점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스웨덴 출신 학자 Krister Stendahl (스탠달) 자신의 저서(Paul among Jews and Gentiles)에서 다메섹 사건은 바울의 실제적인 회심이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 소명을 받은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맞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바울의 정체성은 여전히 유대인이며, 바리세인이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크리스찬이 된 적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바울은 기독교인이 된 바 없기 때문에 바울과 유대교는 연속성이 있었고, 바울은 자신의 약함은 인식했으나 죄의식은 없었다. 그리고 바울은 용서와 구원으로서의 칭의를 강조하지 않고, 바울에게 칭의는 이방인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고안이지, 하나님의 계시는 아니었던 것이 되어버린다.
G.F. Moore(무어), W.D. Davies(데이비스), Krister Stendahl (스탠달) 등의 주장들을 한 유대학자들을 통해서 새 관점이 발전을 촉진 시켰다.
2. 바울의 새 관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주장을 실제로 하고 있는가?
데이비스의 제자 샌더스의 주장: 언약적 율법주의
하나님의 은혜로 유대들이 구원에 들어갔고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언약의 율법에 순종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탈락한다. 라고 주장한다.
2.James D.G. Dunn(제임스 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되어있는 것은 율법의 행위는 다름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시들이다. 바울 당시의 유대인이다
3.Nicholas Thomas Wright (톰 라이트)
바울이 이스라엘의 메시아요 왕이신 예수님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것은 회심 사건이 아니다 라고 보는 것입니다. 다메섹 사건은 바울의 회심 사건 아니다 그냥 사도로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 라고 주장한다.
톰 라이트는 복음이란 죄인이 구원을 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아니다. 죄인이 구원받는 것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그것은 복음이 원래 말하는 바가 아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사망과 죄를 이기셨고 새 시대가 도래 했으며 우리의 경배를 받으셔야 함을 선포하신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또 톰 라이트가 로마서에 대해서 간단한 책도 썼다. 로마서의 주제는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그것이 아니다. 이신칭의 그것은 로마서의 핵심 주제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 로마서의 주제가 무엇인가? 언약에 신실 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아브라함 언약을 어떻게 성취하는 것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톰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증가된다는 것을 반대하고 시초 칭의와 최종 칭의을 구분한다.
3. 여기에 대해서 전통적인 옛 관점의 관점에서 새 관점을 어떻게 비평할 수 있는가?
첫 번째 일세기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으려고 한 사람들이 아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발을 내딛뎠지만 순종해야만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세번째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개종한 것이 아니라 선교사로 이방의 사도로 소명을 받은 것이다.
네 번째 유대인들 문헌들 중 “선별”해서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들어왔다면 어느 정도 순종해야 구원 받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거듭난 성도는 구원의 합당한 구원을 증명하는 성화가 삶의 열매 행동의 변화를 보여야 한다.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국교회에 적용해 보면 한국교회가 구원파식으로 구원 받고 난 뒤에 어떤 죄를 지어도 지옥 가지 않는다. 거듭난 이후에 어떤 죄를 지어도 지옥가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대로 구원 받은 열매 없이 성화 열매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죠.
그들에게 새 관점 주의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주장할 수 없다. 거듭난 성도는 구원의 합당한 구원을 증명하는 성화가 삶의 열매 행동의 변화를 보여야 한다.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적용:
1.풍요로운 복음을 잘 이해하고 가르쳐야한다.
2.칭의, 성화를 잘 요약해둔 교리문답을 잘 교육할 수 있도록 문화의 뿌리를 내려야한다.
질문:
20대 3프로 기독교 비율을 가진 청년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을까?
이 복음을 어떻게 풀어 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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