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론과 구원론이 주요 주제임. 하지만 기독론에 비해 구원론은 상대적으로 적게 연구되어 왔다. 그렇기에 오늘의 주제인 구원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요한복음 1:12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기서 ‘그 이름’은 The 가 아닌 His 로서 예수님의 이름을 뜻한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 즉, 하나님의 가정에 편입되는 권세를 주신다. (입양될 수 있다.)
요한복음 9:28
: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예수님의 제자와 모세의 제자가 대조되고 있다.
위에 두 구절이 요한복음의 구원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한복음 구원론의 간단한 결론
: 요한복은 9장 28절에 근거하여 모세의 제자와 예수의 제자와의 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구원론. 예수의 제자와 모세의 제자의 대결 구도 = 교회와 회당간의 갈등
예수의 제자 - 하나님의 자녀 / 모세의 제자 - 사탄의 가족 (예수를 믿지 않았기에)
회당 - 모세의 제자 - 사탄의 가족
교회 - 예수의 제자 - 하나님의 가족
= 요한복음의 구원론 이해하는 한 패러다임이다.
구원의 하나님은 누구신가?
요한복음 4:22
: “ 너희 사마리아인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 구원이 유대인들에게서 나오기에,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예배한다.”
이 대화는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할 것인지를 다룬다. 하지만 여기서 예수의 제자들과 모세의 제자들이 동일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 집단 모두 동일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느 집단과 함께하시는가. 예수의 제자들과 모세의 제자들 중 어느 쪽에 계시는가. 두 그룹이 동일한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이후 그들의 견해에 차이점에 더 집중 할 수 있게 해준다. 구원의 과정 중 예수님의 대적들은 그들의 하나님에 관한 견해를 바꿀 수 있다. 예수님이 마귀, 신성모독자가 아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시는 한, 하나님은 그런 고백을 한 사람들에 의해 예수님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분이다(20.28).
3.1. 모세의 제자들의 긍정적인 모습.
사두개파, 산헤드린, 바리새인 등
종교적인 열심, 잘 짜여 진 조직, 제의적 활동, 정결 부정결에 대한 구분, 모세오경을 통해 율법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 절기를 철저히 지킴(특히 안식일) -
그러나 이것을 통해서 구원이라는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하였다.
3.2. 모세의 제자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요한복음에서는 도적질 같은 구체적으로 개인이 지은 죄를 부각시키지 않고 그것이 결정적인 죄라고 언급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에서의 근원적인 죄 - 이것들이 모세의 제자들에게 해당 된다.
: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계시를 믿지 않는 것, 성자 예수님을 구원의 길로 믿지 않는 것,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라고 하신을 일을 행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성부하나님의 현존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하라고 하신 그 일을 모두 수행하셨기 때문에.
구원적 신앙 즉 구원을 얻는 믿음은 예수님의 메시지와 인격을 자기희생적이며, 지적이며, 실존적으로 즉 종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 수용의 정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행하는 순종적 삶으로 인도하는 메시지에 일치하여 언행이 완전히 변화되는 정도이다.
요한복음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신앙과 출생의 관계가 나타난다: 믿는 사람은 영생 =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 예수님을 믿는다 = 하나님께로서 남.
따라서 당신이 믿으면 하나님에게서 난 자요,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은 영생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태어남으로써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성도로 하여금 이 세상의 삶의 모든 차원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경험하게 하는 영생 때문이다.(3:15-16 등)
하나님에게서 태어남, 영생, 하나님의 자녀,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과 같은 용어들은 ‘가족 이미지’ 와 연관된다. 요한복음의 구원은 1세기 개인주의가 아니라 가족 중심 세계의 관점에서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구원의 순간은 영적인 가족 안에 태어난 영생을 받는 것이다.
영생 = 요한복음 내에 구원표현 / 출생의 결과 = 영생 / 영생 = 구원의 결과를 묘사
믿음 = 신앙 / 신앙 = 예수님을 완전하고 무조건적으로 영접하는 태도
하지만 이것으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다. 그래도 이것은 위로부터 태어나기 위한 중요한 필요조건.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생명을 주셨고 자신도 제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때문에 이 구원의 과정에 중보자이시다(요 6:57).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는 순간에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는다. 신앙과 출생은 늘 함께 가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신앙은 사람의 태도, 반응을 묘사한다. 반면 출생은 그 사람의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변화 혹은 구원의 순간을 묘사한다. 하나님만 출생을 주신다.
결론
요한복음의 구원론은 요한공동체가 모세의 제자들과 직면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표출된 것임으로 요한복음서의 구원론적 표현들은 일반적인 것이 아닌 특정적인 것이다. 이 이유로 구원론은 특정 문제를 언급하며 그것의 해결을 추구한다. 구원론 적 용어들은 상징적 세계를 강화하기 위해 발전되었고 그 결과 예수님의 제자들의 사회적인 응집력을 재확인 시킨다.
요한이 매 상황마다 구원의 이슈를 말한 것은 아니다. 요한일서의 구원론 적 표현은 기독교인이 그릇도니 행위와 개인과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발생한 교회내부의 상황에서 개인적인 죄에 대한 질문이 언급된 상황이다.
이것은 요한일서의 구원론과 요한복음의 구원론의 상이함을 말해주는데, 그 이유는 다른 상황이 다른 접근을 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가정의 가훈: 13:1 - 내가 너희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한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내가 전한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하신다. 즉, 사랑과 진리. 진리안에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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