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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바르트의 신학사상

by noahegabi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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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의 신학사상

 

바르트의 신학사상

 

1. 바라트에게서의 신학

 

1.<신학의 과제로서의 하나님의 말씀>(1922)

하나님에 대해 말해야 하는 당위와 피조물로서 말할 수 없는 무능의 갈등

신학자들은 기본적인 갈등이 있다. 왜냐하면 신학자들은 하나님에 관해서 말해야하는데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자들이다.

-> 1) 말해야하는 당위성 2) 인간(피조물)로써 말할 수 없는 무능함

-> 이 두가지를 인지를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결국 이것이 신학자의 난점이라고 지적한다.

 

신학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

칼빈우리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말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에 대해 말한 것에 기초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 할 수 있다.”

-> 하나님에 대한 바른 생각이 신학이 아니라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바른 생각과 말씀이 신학과 성경이 된다.

-> 신학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칼빈주의(Neukalvinismus)’, ‘신정통주의(Neuorthodoxie)’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니면, 칼빈주의자나 정통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성경을 바로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는하지만 우리가 주장하는 성경과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것이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면서 하나님에 대한 경배여야한다.

 

키에르케골(Kierkegaard) -칼빈(Calvin) -루터(Luther) -바울 예레미야

바르트의 신학노선

 

“Alle Theologie ist theologia viatorum” “모든 신학은 순례자의 신학이다.”

슐라이어마허, 신학이 결국 인간의 감정과 의식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인간학이었다. 그러나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 영원과 시간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창조주로써 인간은 피조물로써 하늘과 땅 영원과 시간은 엄격하게 구분이 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서 말씀만 가지고 우리가 신학을 해야한다. 주장을한다.

 

모든 신학은 순례자의 신학이다.”

 

축복받은 자의 신학 ->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에 대해서 온전히 알 때 그것이 축복받은 자의 신학

나그네 신학 -> 구원을 받았지만 나그네로서 땅위에 살 때는 신약의 말씀처럼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할 때도 있고 완전히 아는 것도 아니고 부분적으로 아는 때도 있다.

 

순례자의 신학->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신학을 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부족하면서 불완전한 순례자의 신학이다. 라는 뜻으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바르트의 성경해석론

사실 바르트는 성경해석론과 성경관 보면 그의 사상이 잘 들어온다. 그것이 그의 신학 사상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중요한 핵심사상이다.

 

<로마서 강해> 1판 서문 -> 정확하게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기 시대의 아들로서 자기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 나라의 선지와 사도로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 했다는 점입니다. 그때와 여기 그때와 지금 거기와 여기의 차이는 고려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려의 목적은 단지 이러한 차이가 사물의 본질에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입니다.”

 

-> 바울은 그 때 당시의 사람으로서 그 시대의 아들로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기록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의 선지자와 사도로서 모든 시대 모든 인간들에게 말했다. 그때 그 사람들에게 말한 것과 하나님 나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말한 것을 살펴볼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별 차이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 연구의 역사비평적 방법은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전혀 과잉 되지 않는 이해의 준비를 가리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내가 그것과 옛 영감설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후자 옛 영감설을 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좀 더 위대하고 좀 더 깊고 좀 더 주요한 정당성,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해 자체의 작업을 말해주기 때문이고, 그것이 없이는 모든 준비가 무의미하게 가치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 결국 자신이 볼 때는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 2가지가 있는데 ,

1)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연구해 왔던 역사 비평적 방법

2)전통적인 옛 종교개혁자들의 영감설

 

역사비평적 방법은 이해의 준비에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언어적인 준비 배경준비 여러 가지 거기에 대해서 이해할려는 언어적 배경, 문화적 배경, 사회적 배경 이러한 것들이 역사비평적 방법이 보여주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서 준비로서 정당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러나 !! 이러한 역사비평적 방법과 옛 영감적 방법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옛 영감적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해의 준비가 아니라 이해하는 작업 자체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성경 텍스트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작업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없다면 무가치하게 될 것이다.

 

-”나는 기쁘다. 왜냐하면 이 두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아야만 한다는 점에서 나는 기쁘다. 그러나 나의 모든 관심은 역사적인 것을 통하여 바로 영원한 영이신 성경의 영 안으로 들여다 보는 것에 있다.“

 

-> 바르트의 사상인데, 비록 역상비평적 방법과 전통적 영감설 가운데 둘 중에 하나만을 택하라고 하면 영감설을 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앞에 것은 이해의 준비를 가져다 주는 것에 비해서 영감설은 성경 본문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하는 이해의 작업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그것을 택하겠지만은 이 두 가지 모두를 택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것이다.

 

-> 역사적인 것을 통하여 영원한 영이신 성경의 영 안으로 들여다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 역사비평적 방법에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역사에 머물지 않고 시간에 머물지 않는 영원한 영이신 성경을 들여다 보는 것이 자신의 입장이라고 말한다.

-> 영감설 + 역사비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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